‘인내와 시간은 내 싸움의 영웅’
“그들도 공격하면 진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인내와 시간이야말로 내 싸움의 영웅이다! 쿠투조프는 생각했다. 사과는 다 익을때까지 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익으면 저절로 떨어진다. 설익었을 때 따면 사과는 물론 나무도 상하게 되고 자신의 잇몸도 상할 것이다. 그는 노련한 사냥꾼처럼 짐승이 입은 상처는 러시아 군의 힘이 허용하는 정도의 상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치명상인가 아닌가하는 것은 미지의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치명상임을 대충 알아채고 있었다. 그러나 확증이 필요했고 기다려야만 했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의 한 대목이다.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취했던 대륙봉쇄령은 유럽의 동쪽 끝 러시아를 곤란에 빠뜨렸다. 해외로부터 수입되는 물자가 줄어들자 물가가 급상승했다.
결국 러시아는 영국의 값싼 제품을 수입하기 위해 교역을 재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이 모습이 나폴레옹한테는 눈엣가시처럼 걸린다. 결국 1812년 나폴레옹은 러시아로 진격한다.
대략 60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위대한 군대’라는 칭호를 받아가며 진격한다. 그 전까지 패한 적인 없는 군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장군 쿠투조프는 후퇴를 택한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필살의 공격으로 적의 숨통을 끊는 전략을 취해왔다.
쿠투조프는 그런데 모스크바까지 계속 후퇴만 한다. 러시아의 수도까지 포기한 것이다.
이런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특히 나폴레옹에게 멍청하게 보이지만 쿠투조프는 나폴레옹의 장단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리고 자국 군대에 대해서도 충분히 파악하고 내린 전략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폴레옹은 모스크바를 함락시킨다. 그러나 러시아의 항복을 받아내지는 못한다.
오히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선언한다. 보급선이 너무 길어진 프랑스는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없다.
텅빈 모스크바를 지키고 있다고 러시아가 항복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후퇴를 결정한다. 굶주림 앞에 장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쿠투조프의 판단대로 ‘시간과 인내’가 러시아를 살린 결정적 전략이 돼 버렸다.
후퇴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비겁’이라는 단어와 연계돼 있다.
그러나 후퇴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주변의 영향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이 과정은, 그래서 역경과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덕목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인생의 성공을 부르는 ‘인내와 시간’
후퇴가 그렇다고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목적이 되는 순간,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적이 아닌 후퇴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근거로 반격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의 인내인 것이다.
시간과 인내에 대한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고대 로마의 장군 ‘세르토리우스’가 등장한다.
내용을 축약하면 전투를 앞두고 위축되어 있는 병사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두 명의 병사를 나오게 한다.
나이든 병사와 젊은 병사를 나오게 해서 나이든 병사에게는 나이 어린 말을 그리고 젊은 병사에겐 늙은 말을 주고 말의 꼬리를 뽑으라고 명령한다.
젊은 병사는 꼬리를 잡고 한꺼번에 뽑으려고 했고, 나이든 병사는 말의 꼬리에서 털을 하나씩 뽑아 나갔다.
건강한 병사는 아무리 힘을 써도 말의 꼬리를 뽑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이든 병사는 시간은 좀 걸렸지만 별 힘 들이지 않고 꼬리털을 다 뽑는다.
이 상황에서 세르토리우스는 병사들에게 ‘인내는 폭력보다 강하다’라고 선포한다.
그리고 아래의 인용문처럼 “시간은 바른 판단을 하고 기회를 기다리는 자에게는 훌륭한 벗이며 믿음직한 동지가 된다”고 말한다.
“시간은 바른 판단을 하고 기회를 기다리는 자에게는 훌륭한 벗이며 믿음직한 동지가 되지만, 불합리하게 사용하는 자에게는 목숨을 앗아가는 적이 되는 것이오”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묘약을 빚으려면, 기술이나 학문 만이 아니라 끈기도 필요한 법이오. 오묘하고 힘차게 무르익으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이라 묵묵히 몇 년씩 그 일에 매달려야 한단 말이오” 괴테 ‘파우스트’
“만물을 변화시키고 사그라뜨리는데 있어서 시간은 사람의 의지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마련이지요”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전쟁과 평화’의 쿠스타프 장군이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세리토리우스 장군처럼 인내와 시간을 잘 보낸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를 우리는 흔하게 목격한다.
그런데 인간은 일을 시작할 때 그 결과를 아는 것이 아니라 일의 끝에 가서야 겨우 파악하게 된다.
이에 따라 아테네의 영웅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르면서, 일을 그르치고 난 뒤에 후회하지 말고 사전에 막을 수 있는 패배는 피해보자고 아테네 시민들을 설득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페리클레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페리클레스는 무모한 전투, 예측되지 않는 전투는 피하는 실리형 인간이었다. 스파르타의 막강한 육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아테네 성벽안으로 모든 아테네인들을 피난시킬 만큼 그는 주도면밀했다.
그리고 아테네의 최강 해군력을 발휘,, 스파르타 진영을 괴롭힌다. 그의 이같은 전략은 최소한 역병으로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유효했다.
그런데 톨마이우스의 아들 톨미데스가 큰 공을 세우고자 보티오이아를 침공하겠다고 나선다. 페리클레스는 당연히 시민들에게 반대하는 연설을 한다.
아테네 시민 중 용감하고 진취적인 병사 1000명이 그를 따르겠다고 나선 상황이므로 다급했다.
이 연설의 말미에 페리클레스가 한 말이 아래의 인용문 “나의 충고를 듣지 않겠다면 가장 선한 충고자인 시간에게 물어보시오”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연설은 당시에 효과를 보지 못했다. 며칠 뒤 톨미데스와 용감한 병사들이 코로네아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아테네 시민들은 페리클레스의 말을 재인식하게 됐다.
“시간은 모든 것을 옛것으로 만들어 모든 것을 밝혀준다” ‘아이스킬로스’
“나의 충고를 듣지 않겠다면 가장 선한 충고자인 시간에게 물어보시오” ‘페리클레스 ’
“시간은 모든 것을 밝혀준다. 시간은 묻지도 않는데 이야기해주는 수다쟁이다” ‘에우리피데스’
예측 능력이 없는 인간들은 페리클레스의 말처럼 시간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불행히 시간은 사후적이다. 그래서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들인 아이스킬로스나 에우리피데스가 말한 위의 인용문이 정답인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밝혀준다. 그런 만큼 우리는 충분히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자주 우리는 주어진 정보를 무시한다. 직관이 빛나려면 숙고하는 삶이어야 가능하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